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총정리
- 문화 생활/예능 & 교양
- 2021. 11. 6.
반갑습니다. 하이로즈입니다.
이번에 꼬꼬무에서 다룬 사건은 1993년 발생했던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입니다.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수백 명이 죽었던 사고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형 배 침몰 사건은 서해훼리호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습니다.
꼬꼬무에서 다룬 그날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때는 1993년 10월 10일, 파도가 거센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낚시를 하기 위해 휴가 차 '위도'라는 섬으로 몰려들게 됩니다.
이번 꼬꼬무에서는 그날의 몇몇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병길 님, 현철 님, 성회 님입니다.
이들은 직장 동료들과 또는 가족들과 각각의 이유로 위도에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위도에 있던 사람들은 파도가 너무 거세 낚싯배로 섬을 벗어나기에는 위험했습니다.
서해회리호는 당시 위도와 격포를 잇는 단 하나의 여객선으로 하루에 딱 한 번 운행했다고 합니다.
위도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서해훼리호에 몰려들었고, 사람을 가득 채운 서해훼리호는 위태롭게 육지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병길 님, 현철 님, 성회 님은 그날의 사고로 의지하던 동료를 잃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되었습니다.
사고 난 위치는 위도와 격포항 중간 지점이었고, 임수도와 가까운 지점이었습니다.
당시 생존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서해훼리호를 공격하고 모터가 밧줄에 걸려 움직임이 멈추고 배는 중심을 잃고 결국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생존자 분들은 모두 위태롭게 아이스박스나 구조보트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고 해요.
사고 당시 10월이어서 몸에 체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이미 체력이 손실된 탓에 다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인근 지역 낚싯배들이 생존자들을 살리기 위해 사고지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종국호 선장 이종훈 님과 그의 손님들이 살린 생존자만 44명이었다고 해요.
배가 작았기에 44명만 실은 채로 떠날 때 다른 낚싯배들이 생존자분들을 살리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인 배만 총 46척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들이 구한 목숨이 70명이었습니다.
병길 님은 부부 동반 모임으로 총 6쌍이 위도에 갔었는데 이 중 2쌍만 구조되었습니다.
성회 님과 현철 님 직장 동료였던 일행 13명 중 3명만 생존했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서해훼리호에 탑승했던 인원을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객선 회사에서는 당시 탑승객이 140명이라고 하고, 경찰에서는 200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유족들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이들은 시신을 수습하게 됩니다.
그렇게 첫날 수습된 시신은 14 구였습니다.
서해훼리호의 승객 정원은 207명입니다.
하지만 나흘 째 확인된 사망자만 138명이었습니다. 이미 208명으로 승객 정원을 초과한 것이었죠.
드디어 서해훼리호를 들어 옮기는데, 그렇게 154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사망자는 292명입니다.
당시 서해훼리호에 탑승객은 총 362명이었던 것이죠.
서해훼리호는 왜 침몰했나?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안일한 대응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서해훼리호는 이미 적자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메우고 있는 구조였다고 하는데요.
하루에 한 번만 더 운행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를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단지 44만 8천 원이 더 들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더불어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당시 멸치액젓이 600통이 실려있었고 화물중량이 6톤이 초과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해훼리호 사건은 그날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습니다.
1953년 창경호 사고
1970년 남영호 사고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막을 수 있던 사고였는데, 이런 사고가 20년 주기로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설마 하는 생각 때문에 말입니다.
위도에는 서해훼리호 참사 위령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런 사고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꼬꼬무